관리자



🍸 쑥크림샷 — 단맛 위에 구조를 얹다






1. 이건 달콤함을 연기한 칵테일입니다


이 칵테일을 처음 마신 사람은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달콤하네요.”


그리고 몇 초 후, 그 인상이 슬며시 바뀝니다.
“근데 묵직하네요. 묘하게 남네요.”


그 사이에서 저는 살짝 웃습니다.
그게 제가 의도했던 구조니까요.


쑥크림샷은 보기엔 부드럽고, 한 입 머금으면 달콤하고,
하지만 마신 뒤에는 낯설 만큼 무게 있는 잔상과 함께 마무리되는 술입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낯선 감정일 수 있어요.
‘디저트처럼 다가왔다가, 위스키처럼 사라지는 칵테일’이니까요.





2. 41이라는 도수, 구조의 시작점


쑥크림샷의 베이스는 주향소주41입니다.
도수는 41도.
사실 이 정도면 칵테일 베이스로 쓰기엔 꽤나 긴장감 있는 숫자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술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도수가 높아서가 아닙니다.


주향41은 곡물 증류주의 본질을 가장 견고하게 담고 있는 술이에요.
향은 깨끗하지만 가볍지 않고,
입에 머무는 느낌은 맑지만, 단단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술은,
무언가를 얹었을 때 그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고 받쳐주는 힘이 있습니다.


쑥크림샷이라는 복합적인 레이어가 성립하려면
기초가 단단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향41은 가장 믿음직한 기초였고,
실제로도 이 술은 칵테일에서 무너지지 않는 바닥을 만들어줍니다.




3. 붕어빵과 쑥이 만났을 때


이 칵테일의 두 번째 키워드는 타이야키 리큐르입니다.
이건 쉽게 말하면, 팥의 느낌을 담은 리큐르인데요.


붕어빵의 단팥 같은 뉘앙스가 느껴지기 때문에,
보통은 따뜻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소비되곤 하죠.


하지만 저는 이 팥의 단맛을
단지 어린 시절의 향수로만 접근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쑥 베이스를 넣었습니다.
쑥은 흔히들 ‘한약 같다’고 표현하는 약간의 쌉싸래함과 허브스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미묘한 쓴맛은 팥의 단맛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말하자면, 이 칵테일의 톤을 낮춰주는 색조 조절 같은 것이죠.


이 조합은 의외로 잘 맞습니다.


쑥은 팥의 경계를 정리해주고,
팥은 쑥의 거칠 수 있는 질감을 감싸줍니다.



4. 크림 위에 얹은 한 스푼 — 볶은 콩가루


그 위에는 생크림을 얹고,
마지막으로 볶은 콩가루를 1tsp 살짝 뿌립니다.


여기서 콩가루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마지막 레이어고,
입에 닿는 첫 질감이기 때문입니다.


이 콩가루는 절대 많지 않아야 합니다.
한 티스푼이면 충분해요.


가볍게 흩뿌려졌을 때, 생크림의 부드러움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고소한 향을 끌어올립니다.


입에 넣기 전 이미 코로 먼저 마시는 느낌을 만들어주는 장치죠.

많은 분들이 이 칵테일의 마지막 기억을 콩가루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그건 향 때문이라기보단,
그 향이 기억을 당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소한 냄새는 항상 어느 시점의 익숙함과 연결돼 있으니까요.




5. 단맛은 쉽게 끝나고, 구조는 남는다


한 모금을 넘기고 나면,
처음의 생크림은 어느새 사라져 있고,
뒤에 남는 건 쑥과 주향41이 남긴 구조입니다.


그 구조는 명확합니다.
약간의 쌉싸래함, 깊은 곡물 향, 미묘하게 남는 팥의 잔당감.
그 셋이 남기고 간 자리에
“이게 뭐지?” 하고 다시 되짚게 만드는 여운이 남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칵테일은,
마신 뒤에 맛보다 구조가 기억나는 칵테일입니다.
맛은 감각이고, 구조는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쑥크림샷은 그 기준 안에서 설계된 칵테일입니다.






6. 이 칵테일을 왜 만들었는가


사실 저는 이 칵테일을 만들면서
‘사람들이 좋아할까?’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이걸 마시고 싶을까?’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부드럽지만 가볍지 않고,
달콤하지만 질리지 않고,
무겁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술.
그걸 만들고 싶었어요.


쑥크림샷은 기억을 자극하는 맛을 담고 있지만,
그 구조는 현재의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게 제가 이 칵테일을 만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입니다.






7. 이 술은, 부드럽게 시작해 단단하게 끝납니다


친구처럼 다가와서
이야기 끝엔 스승처럼 남는 술이랄까요.


쑥크림샷은 다정하게 시작하지만,
결코 얕지 않습니다.
단맛이 길게 남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술의 무게가 조용히 떠오릅니다.


“어떤 맛이었지?” 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술,
그게 제가 이 술에 담고 싶었던 태도입니다.





8. 마무리하며 — 이건 실험이 아니라 설계입니다


많은 분들이 새로운 칵테일을 만들 때
‘실험’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하지만 저는 쑥크림샷을 실험이 아니라 ‘설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재료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고,
양과 순서에도 의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칵테일은 흔들림 없이 마무리됩니다.


마시는 분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며,
그 사람의 기분이 흐트러지지 않게 설계한 잔입니다.


그리고 그 배려가 느껴졌다면,
그건 이 칵테일이 제 역할을 잘 해낸 거라고 생각합니다.




쑥크림샷은 단순한 달콤함이 아닙니다.
그 안엔 향, 구조, 질감, 그리고 조용한 긴장감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칵테일을 마시는 당신의 시간도,
그만큼 단단하게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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